「韓民族新聞」的人物特寫
 
 
促成'518'卅'228屠殺'交流的台灣媒體人朱立熙

『光州抗爭精神與過去清算,都讓人羨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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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的書房裡有一副老舊的防毒面具。

1987年6月,擔任台灣有影響力的「聯合報」漢城特派員的朱立熙,每天都在持續的民主化運動現場觀察。

他在瀰漫著嗆鼻催淚瓦斯的示威現場,戴著防毒面具在探索著祖國台灣的未來。當時,台灣是在國民黨獨裁統治下,新聞自由受到限制的時代,他用筆名在台灣的地下媒體雜誌介紹韓國。他細密觀察民主化的韓國,並在字裡行間剖析意義、然後發稿。當時還是年輕民進黨員的陳水扁,都從他的報導而學習韓國的民主化過程,經過幾年歲月而成為總統。

在台灣媒體界與學術界被認為是最權威「韓國通」的朱立熙,十八日在光州參加了518的紀念活動,而且參與了跟「518紀念財團」簽署業務交流備忘錄的儀式,他是屬於「228事件紀念基金會」這個團體。基金會是為了促進1947年2月28日開始的國民黨對台灣人屠殺事件的補償受害者、追究真相、懲處元兇等工作。

當時從中國本土到台灣的國民黨,對台灣本地人非常輕視。二二八事件是警察毆打販賣走私香菸的老婦引發台灣人的抗議,並對台灣人濫行射擊導致全國展開反政府示威,進而宣布戒嚴令,最後造成二萬八千台灣人死亡的事件。從國家權力恣行的暴力立場來看,台灣人想要比較韓國的518光州事件與台灣的228事件。

「韓國的518連總統都已被司法處理,而且在十五年就『清算過去』;相反地,台灣在事件發生六十年之後的現在,仍無法揭露主謀者是誰。這是台灣人對韓國感到羨慕的地方。」

台灣政府是在事件發生四十八年之後,才在1995年由李登輝總統首次以國家元首身份對受害者家屬道歉,但只對兩千多名受害者給予金錢補償,對於事件的真相仍是未能釐清。

朱立熙會牽成518與228的結盟,是因為對韓國特別的熱愛。朱立熙考進台灣政治大學韓文系就跟韓國結下了因緣,他畢業後進報社當攝影記者,一年後就升任攝影組長,展現了出色的能力。後來轉任採訪記者,以豐富的國際嗅覺從1985年開始擔任三年駐首爾的特派員,當時他也採訪「韓民族新聞」的創刊過程,並訪問了故宋建鎬社長,希望藉以引領台灣媒體的民主化。

他寫了十一本跟韓國有關的書,歷任報社的社論主筆、國營電視公司副總經理,現在大學教韓國與新聞。

他並且開了一個「台灣心•韓國情」的個人網站,希望增進台灣人對韓國的理解,朱立熙說,「希望能學習韓國清算過去的模式,讓228事件的真相能儘早釐清。」

(原載2007.5.19.「韓民族新聞」人物版,李吉雨現任該報輞路報副總編輯)




[이사람] “광주항쟁 정신도 과거 청산도 부럽습니다”
‘5•18’-‘2•28 학살’교류 앞장 대만 언론인 주리시

87년 민주화 현장 취재보도한 특파원 출신 ‘한국통’
60년 전 2만8천명 희생된 ‘2•28학살’ 진상규명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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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서재에는 낡은 방독면이 있다.

지난 87년 6월, 대만의 유력지인 <연합보>의 서울 특파원이었던 주리시(54)씨는 연일 계속되는 민주화 운동의 현장을 지켜 보았다.“

매운 최류탄 가스가 터지는 시위 현장에서 그는 방독면을 쓰고 조국 대만의 미래를 탐색했다. 당시 대만은 국민당 독재하에서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던 시절. 그는 대만의 지하 언론 잡지에 필명으로 한국을 소개했다. 민주화되는 한국을 촘촘히 살피며 행간의 의미를 담아 송고했다. 세월은 흘러 당시 그에게서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학습하던 청년 민진당 당원 천수비엔은 세월이 흘러 총통이 됐다.

대만 언론계와 학계에서 최고의 ‘한국통’으로 꼽히는 주씨가 18일 광주에서 벌어진 5.18 기념행사에 참가했다. 그리고 ‘518 기념재단’과 업무교류 비방록을 체결했다. 그가 속한 단체는 ‘2.28사건 기념기금회’. 이 단체는 지난 1947년 2월 28일 시작된 국민당의 대만인에 대한 학살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 보상을 추구하고 있다.

당시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에 밀려 온 국민당은 대만 본토인들을 무시했다. 경찰관이 담배 파는 노파를 구타하는 것에 항의하는 대만인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하면서 전국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계엄령까지 선포되며 결국 2만8천여명의 대만인들이 사망한 사건이 2.28사건이다. 국가 권력이 자행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대만인들은 한국의 5.18을 대만의 2.28사건과 비교하곤 한다.

“한국은 5.18을 대통령까지 사법처리하며 15년만에 ‘과거 청산’했어요. 반면 대만은 사건 발생 60년이 지난 지금도 주모자가 누군지 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있어요. 대만인들이 한국에 대해 부러움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대만정부는 사건 발생 48년만인 지난 1995년 리덩후이 총통이 국가 수반으로는 처음으로 희생자 가족에 사죄의 뜻을 표시하고, 관련 피해자 2천여명에게 금전 보상을 했을뿐, 아직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형편이다.

주씨가 5.18과 2.28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은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착때문이다. 대만 정치대의 한국어학과에 입학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주씨는 졸업후 신문사에 사진기자로 입사해 1년만에 사진부장에 오르는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취재기자로 변신한 그는 해박한 국제 감각으로 85년부터 3년간 서울주재 특파원을 지냈다. 당시 그는 <한겨레신문> 창간 과정을 취재하며 고 송건호 사장을 인터뷰해, 대만 언론의 민주화에 길잡이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 관련 책을 11권 쓰기도 한 그는 최근 ‘한국의 5.18에서 본 대만의 2.28’이란 책을 발간했다. 신문사 논설위원과 국영 텔레비젼 방송국 부사장을 역임한뒤 지금은 대학에서 한국과 신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주씨는 ‘대만인의 마음, 한국인의 정’(臺灣心•韓國情)이란 자신의 싸이트(www.rickchu.net)를 운영하며 대만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있다.

글•사진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